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가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에 대해 일제히 리포트를 발표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는 롯데케미칼이 최근 기한이익상실(EOD, Event of Default) 이슈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롯데그룹의 유동성과 관련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롯데케미칼과 그룹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보겠습니다.
롯데케미칼의 기한이익상실(EOD) 이슈란?
지난 21일, 롯데케미칼은 발행 예정이었던 회사채와 관련하여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이 과거 발행한 공모사채 중 일부에는 '3개년 누적 평균 EBITDA/이자비용 비율을 5배 이상 유지'라는 특약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이 비율이 4.3배로 떨어지면서 해당 특약조건을 준수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기한이익상실이란 특정 상황에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준 자금을 만기일 이전에 조기 회수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번 사례에서 기한이익상실 선언은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사채권자와 사채관리회사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즉, 사채권자집회에서 채권자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미상환 잔액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기한이익상실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주요 사채권자인 연기금 및 증권사들과 면담을 진행 중입니다.
EOD 이슈의 영향과 대응 방안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사태를 즉각적인 리스크로 보지는 않는 분위기입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전체 사채 잔액은 약 2조 3000억 원이며, 기한이익상실 시 이를 조기 상환해야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10월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 약 2조 원, 매각 가능한 장기 투자자산 4000억 원, 미소진 여신한도 1조 96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조기 상환 청구가 발생하더라도 자체 자금으로 대응 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또한, 롯데케미칼은 22일 공시를 통해 "종속회사인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의 지분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그룹 차원의 유동성 문제는 현재로서는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 롯데건설이 롯데케미칼의 보증을 통해 회사채를 발행했던 점을 고려할 때, 만약 롯데케미칼의 조기 상환 이슈가 악화될 경우 롯데그룹 전체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과 장기적 우려
롯데케미칼의 기한이익상실 이슈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석유화학 업황의 부진입니다. 한국기업평가는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시설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이 지속되면서, 롯데케미칼은 2022년 이후 영업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수요 약세와 공급 부담 등을 고려했을 때, 의미 있는 영업 현금 창출력 회복에는 중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특약조건인 '3개년 누적 평균 EBITDA/이자비용 비율 5배 이상 유지'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신용평가도 "롯데그룹의 화학 부문 실적 악화로 그룹의 현금 창출력이 저하되고, 차입금이 증가하고 있다"며 "건설 부문의 과중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보증도 부담"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룹 차원의 사업 구조 재편과 재무 구조 개선 방안이 필요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지 못할 경우 향후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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